[가사/형사] 파묘는 누가 결정하는가? (대법원 2023. 5. 11. 선고 2018다248626 전원합의체 판결 [유해인도] 의 분석) - 조원익 변호사
등록일 2024.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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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2024년 2월에 개봉하여 천만 관객을 돌파하여 흥행에 성공한 장재현 감독의 영화 ‘파묘’ 덕분에 대중들이 ‘파묘’(破墓)라는 단어에 많이 익숙해진 듯하다. 영화에서 나타나듯이, 이장을 하기 위해서는 파묘를 하여야 하기 때문에, 파묘를 결정하는 것은 곧 이장을 누가 결정하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그런데 부모님을 포함한 조상님들의 묫자리를 이전하는 문제는 영화 파묘에서와 같은 비현실적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묘지를 누가 관하는지에 대한 법적인 문제와 연결이 되어 있다.
또 여러 사회환경의 변화로 묘를 어떻게 관리해야하는지에 대한 현대인들의 인식은 많이 달라졌는데, 그러는 사이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았던 묘가 없어지고, 묘 안의 시신이 없어진 사례도 종종 있다. 각종 부동산 토지개발로 인해 무연고묘지로 잘못알고 훼손되는 경우도 있고, 후손들 사이에서 여러 갈등이 있어서 무단으로 이장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럼 파묘, 이장은 누가 결정할 수 있고, 어떻게 진행하여야 할까?
2. ‘제사’가 민법에 규정되어 있다고?
현대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제사’는 무엇일까. 혹자는 조상을 섬기는 유구한 전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조선시대 유교문화의 산물일 수도 있으며, 신앙에 따라서는 우상숭배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종교나 신앙의 영역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는 신념에 따라 정하면 되는 문제로 인식되는 것 같다.
그러나, 민법은 ‘제사’에 대해서 일부 규정하고 있고, 제사에 관한 사항은 법률적 사항이 될 수 있다. 민법은 제1008조의3(분묘 등의 승계)라는 조문을 통해 ‘분묘에 속한 1정보 이내의 금양임야와 600평 이내의 묘토인 농지, 족보와 제구의 소유권은 제사를 주재하는 자가 이를 승계한다’고 정리하고 있다.
금양임야라는 것은 양도할 수 없는 산지라는 뜻인데, 일반적으로 상속재산이 되지 않고, 제사와 신앙의 대상으로서 제사 주재자에게 계속 승계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3. 파묘와 제사주재자는 어떤 관계인가?
형법 제160조는 ‘분묘를 발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른바 ‘분묘발굴죄’이다. 여기서 분묘발굴을 모두 처벌하는 것은 아니고, ‘분묘에 대한 관리 및 처분권이 있는 사람의 동의가 없는 분묘발굴’을 처벌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분묘의 발굴은 분묘에 대한 관리처분권을 가진 제사주재자의 권한일 수밖에 없다. 정리하자면 ‘파묘는 제사주재자의 허락 아래에서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4. 그럼 누가 제사 주재자가 되는가?
지금으로부터 불과 15년 전인 2008년, 대법원은 2008. 11. 20. 선고 2007다27670 전원합의체 판결(이하 ‘2008년 판결’이라고 함)에서 “제사주재자는 우선적으로 망인의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협의에 의해 정하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망인의 장남(장남이 이미 사망한 경우에는 장손자)이 제사주재자가 되고, 공동상속인들 중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망인의 장녀가 제사주재자가 된다”고 판시하였다.
즉 협의에 의하되, 협의가 없으면 장남, 장남도 없으면 차남이 아니라 장손이 제사주재자가 된다고 하였다. 2008년 판결도 그 이전에는 적장자를 제사주재자로 하던 종래 판시를 변경하여, 적서의 차별 없이 장자에게 제사주재권을 주었다는 점에서 일부 변화가 있는 판결이기는 했다.
그런데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의 관계를 정했던 호주제에 대한 민법규정이 2005년 헌법재판소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고, 2008년 1월 1일부터 완전히 폐지되었는데(호주제를 폐지하는 민법개정안은 2005년 통과), 호주제와 동일한 방식으로 제사주재자를 정하는 것이 조금 이상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하여, 대법원은 2023년 위 방식에 대한 새로운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놨다.
대법원은 2023. 5. 11. 선고 2018다248626 전원합의체 판결(이하 ‘2023년 판결’이라고 함)에서 ‘그러나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제사주재자 결정방법에 관한 2008년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는 더 이상 조리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려워 유지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는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인정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중 남녀, 적서를 불문하고 최근친의 연장자가 제사주재자로 우선한다고 보는 것이 가장 조리에 부합한다.’고 그 판단 방법을 바꾸었다. 이는 2008년 판결의 소수의견인 김영란, 김지형 대법관의 반대의견이 다수의견으로 전환된 것이다.
가령 어떤 집에 첫째가 딸이고 둘째가 아들, 셋째가 아들인 집이 있다고 가정하면, 그 집의 부모가 사망하였을 때, 그 부모의 제사를 주재할 사람은 누구일까? 2008년 대법원 판결에 의하면 둘째인 아들이었다. 그런데, 2023년 판결에 따르면 첫째 딸이 제사주재자가 된다.
5. 연장자라고 제사주재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2023년 판결은 연장자라고 하더라도 제사주재자가 될 수 없는 경우를 들고 있다. 이 판단기준은 2008년 판결에도 언급되었던 기준이다.
‘상속인의 직계비속 중 최근친의 연장자라고 하더라도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인정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특별한 사정에는, 2008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판시한 바와 같이 장기간의 외국 거주, 평소 부모를 학대하거나 모욕 또는 위해를 가하는 행위, 조상의 분묘에 대한 수호·관리를 하지 않거나 제사를 거부하는 행위,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부모의 유지 또는 유훈에 현저히 반하는 행위 등으로 인하여 정상적으로 제사를 주재할 의사나 능력이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뿐만 아니라, 피상속인의 명시적·추정적 의사, 공동상속인들 다수의 의사, 피상속인과의 생전 생활관계 등을 고려할 때 그 사람이 제사주재자가 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볼 수 있는 경우도 포함된다.’
6. 망인의 유언과 달리 화장하거나, 개종해서 더 이상 유교방식의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면 제사주재자가 될 수 없는가?
그렇다면, 종교적인 이유, 특히 개신교인이라서 유교형식의 제사를 못지내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면 제사주재자가 못된다는 말인가?
2023년 판결이 제사주재자를 정하는 기준에 대하여 변화를 가져왔지만, 제사주재자의 권한까지 변경하지는 않았는데, 종래 2008년 판결은 제사주재자의 권한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고, 이러한 판시는 현재도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2008년 판결에서 대법원은 ‘피상속인이 생전행위 또는 유언으로 자신의 유체·유골을 처분하거나 매장장소를 지정한 경우에,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지 않는 이상 그 의사는 존중되어야 하고 이는 제사주재자로서도 마찬가지이지만, 피상속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는 의무는 도의적인 것에 그치고, 제사주재자가 무조건 이에 구속되어야 하는 법률적 의무까지 부담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예를 들어 제사주재자가 매장을 지시한 망인의 유지와 달리, 여러 가지 이유로 화장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제사주재자로서의 의무를 저버린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된다. 종교적인 이유로 제사를 못지내게 되는 경우라도 분묘수호를 지속적으로 하고, 형식을 바꿔서 추도예배나 다른 행사로 대체하였다고 하더라도 제사주재자로서의 의무를 저버린 것이 아니다.
예를들어, 청주지방법원은 2019. 11. 7. 선고 2018가단29658 판결을 통해, 기독교인이라서 제사를 안지내는 장남을 상대로 상속분을 반환하라는 청구를 기각하면서, ‘피고의 부친인 망 M은 기독교도로서 그 장례를 기독교방식으로 치렀고, 그 사망 후 피고의 모 H가 2003.경 기독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하였으며 피고도 천주교 신자이어서 그동안 H나 피고의 집에서 추도식으로 제사를 대신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점’등을 들면서 제사주재자로서 장남의 지위가 변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7. 2023년 판결로 이미 정해진 제사 주재자가 변경될 수도 있는가?
2008년 판결과 2023년 판결 사이의 시대 변화로 인해 이미 정해진 제사주재자를 변경시킬 수 있는가?
아직 2023년 판결이 나온지 1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아서, 이와 관련된 분쟁을 어떻게 정리했는지에 대한 판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법해석으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1) 2023년 판결 이전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남자 중 연장자, 즉 장남이 제사주재자가 되는 관습이 유지되고 있었고, 그에 따라 제사나 분묘에 대한 처분행위(파묘 등)가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이를 갑자기 2023년 판결이 나왔다고 하여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은 사회적 혼란이 크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 즉, 기존의 제사주재자가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2) 반사회질서 행위 등은 소급적으로 무효가 되기도 하지만, 장남이 제사주재자가 되는 관습은 시대의 변화로 인한 결과이지, 이전의 행위가 반사회질서행위라고 볼 수는 없어서, 소급적으로 무효화시킬 수 없다. 즉, 기존의 제사주재자가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3) 2023년 판결을 근거로 이제 제사주재자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이에 대해서는 2008년 판결이 해답을 주고 있다. 2008년 판결을 통해 적장자가 아니라 적서차별없이 장자에게 제사주재권을 인정하면서 ‘ 위 새로운 법리는 이 판결 선고 이후에 제사용 재산의 승계가 이루어지는 경우에만 적용된다고 봄이 상당하다.’라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2023년 판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종전에 장자에게 우선 주어지던 제사주재에 관한 권한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8. 토지의 소유권이 변경되어도 분묘에 관한 권리는 여전히 제사주재자의 것
묘지가 조성된 이후 토지의 소유권이 타인에게 이전되더라도, 분묘에 대하여는 분묘기지권이라는 관습상의 물권이 인정된다. 이는 일종의 토지사용에 관한 물권인데, 법정지상권의 일종이다. 따라서 분묘기지권이 성립한 분묘에 대하여는 여전히 제사주재자의 권한이 미친다.
9. 정리
이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2023년 판결을 근거로, 이제 상속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제사주재자가 된다.
2) 그러나 2023년 판결 이전에 누군가가 제사주재자로 지정이 되었다면 그 자체가 변경되지는 않는다.
3) 제사주재자는 망인의 유지에도 불구하고 화장하거나, 이장할 수 있다.
4) 파묘 및 이장은 제사주재자의 권한이므로 제사주재자의 동의가 없는 파묘는 형법상 분묘발굴죄에 해당할 수 있다.
조원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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