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중 관세 분쟁에 따른 계약 이행 리스크 - 전령현 중국변호사
등록일 2025.06.04
조회수 197
미·중 관세 분쟁 현황과
한국 기업 영향
법무법인(유) 로고스 전령현 중국변호사
2025년 4월,
미·중 간 관세 분쟁이 사상 유례없는 수준으로 악화되었다.
미국은 4월 8일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를 통해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기존 34%에서 84%로 대폭 인상하였고, 4월 16일 추가 인상 조치로 누적 관세율이 245%에 달하게 되었다. 이에 대응하여 중국 정부도 4월 9일 84%로, 4월 12일에는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125%로 인상하는 등 즉각적인 조치를 취했다. 이번 관세 인상은 전자제품, 자동차, 화학제품 등 주요 산업을 중심으로 양국 간 직접 무역뿐만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과 중국 모두를 주요 수출 시장으로 삼고 있다. 특히 일부 기업들은 중국 내 생산기지를 통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어 역시 이번 관세 분쟁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놓여 있다.
급격한 관세 인상 상황에서 국제무역 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들은 생산 및 수출 계획의 변경에 따라 계약을 변경하거나 심지어 해지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될 수 있다. 이때 직면하게 되는 법적 문제는, 이러한 관세 인상이 '불가항력(Force Majeure)'이나 '사정변경(Hardship)'에 해당하여 계약 변경이나 해지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 여부이다. 이 문제는 준거법에 따라 그 판단 기준이 달라지는데, 이 글에서는 중국법상의 관련 규정과 판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중국법상 관세 급증이 불가항력
또는 사정변경에 해당하는지 여부
(1) CISG
국제물품매매계약에 관한 UN협약
한국과 중국은 모두 국제물품매매계약에 관한 UN협약 체약국이므로 우선 CISG의 규정을 보면 다음과 같다.
CISG 제79조는 계약 당사자가 통제할 수 없는 사유로 계약상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경우,
다음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면 책임이 면제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① 계약 체결 당시 해당 사유를 합리적으로 예견할 수 없었고,
② 그 사유나 결과를 회피하거나 극복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③ 그 불이행이 당사자의 통제를 벗어난 사유로부터 비롯된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실제 국제 판례와 실무에서는 단순한 경제적 곤란이나 이행 비용의 증가는 일반적으로 면책 사유로 인정되지 않는다.
특히, 미·중 관세 분쟁과 같이 일정 기간 지속된 정책적 리스크는 예견 가능한 상업적 위험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2) 중국법상 불가항력 및 사정변경 원칙
1) 불가항력 (중국 민법전 제180조)
중국 민법전 제180조의‘불가항력’ 규정은 CISG 제79조 ‘면책 조항’의 핵심 요건과 유사하다. 즉, 리스크를 예견할 수 없고, 피할 수 없으며, 극복할 수 없음이라는 인정 요건을 중심으로 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미·중 관세 정책 조정의 지속성과 규칙성은 2018년부터 추적 가능하며, 이미 중국에 대한 관세 인상이 여러 차례 진행되어 이것이 일반적인 ‘불가항력’상황 즉 자연재해, 전쟁 등과 같이‘예견할 수 없다’는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다.
또한, 관세 마찰의 직접적인 효과는 계약 자체의 이행 불능이 아닌 계약 이행 비용의 증가를 초래할 것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 계약서에 ‘관세 정책의 변화’를 불가항력 사유로 명확히 규정하지 않았다면, 이를 근거로 책임 면제를 주장하는 것은 법적 리스크가 크며, 실무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수 있다.
2) 사정변경 (중국 민법전 제533조)
중국 민법 제533조 ‘사정변경’ 규정에 따르면, 계약이 유효하게 성립된 후, 계약 당사자가 예견할 수 없고, 계약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하게 하며, 어느 한쪽에도 책임을 물 수 없는 중대한 사정 변화가 발생한 경우, 계약을 계속 이행하는 것이 현저히 불공정하다면, 협상 또는 사법절차를 통해 계약 변경 또는 해제를 요청할 수 있다.
이번 트럼프 정부의 비정상적 수준의 관세 인상(일반적인 25% 인상폭보다 현저히 증가)과 중국의 즉각적 대응조치에 따라, 관세 정책의 영향을 받는 당사자는 중국법상 ‘사정변경’조항을 근거로 이번 상황이 예견 불가능하고 통상적인 상업 리스크를 초과한 것이라 주장하며, 계약 해제를 요구할 여지가 비교적 높은 상황이다.
☞ 참고로, 중국법상 불가항력과 사정변경의 차이점은 주로 다음과 같다. 불가항력은 예측할 수 없고 방지할 수 없는 외부적 사건으로 인해 계약 이행이 아예 불가능해졌을 때 계약 위반 책임의 면제에 초점을 둔다.
반면, 사정변경은 계약 체결 후 예측할 수 없던 사정 변화로 인해 계약 이행이 과도하게 곤란해진 상황(예:경제적 위기, 정책 변화)에서 책임 면제 보다도 재협상 또는 계약 변경, 중지에 초점을 두며, 재협상 실패 시 법원이 계약 조건을 변경하거나 해지를 명 할 수 있는 제도이다.
3) 실무와 판례의 태도
중국 법원은 일반적으로 사정변경 주장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국 다수의 판례는 무역 당사자가 해당 산업에 장기간 종사해 왔고, 관세 변동이 반복되어 온 점을 고려할 때, 관세 인상은 상업적 리스크의 일부로 스스로 감수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湖北某公司与上海某公司买卖合同纠纷案”(案号:(2023)沪0117民初20616号); “吉林某公司、包头市某公司买卖合同纠纷案”(案号:(2023)内02民终1704号)
그러나 예외적으로 2019년 베이징 차오양 인민법원은 계약 체결 직후 발생한 관세 인상이 대금의 25%에 해당하고, 당사자 간의 협상도 결렬된 사안에서 사정변경을 인정하고 계약 해제를 허용한 바 있다上海福加德进出口有限公司与北京牧华源国际贸易有限公司买卖合同纠纷案(案号:(2019)京0105民初31831号..
이와 같이 현재 중국 법원의 다수 판결은 관세 정책 변동을 사정변경으로 보아 계약을 변경하거나 해제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으나, 최근의 관세 인상은 그 규모, 빈도, 적용 범위에서 과거와 비교했을 때 이례적인 수준이며, 이러한 변화가 무역 당사자의 감당 가능한 리스크 수준을 넘어섰다고 볼 여지도 있다.
따라서 중국법이 적용되는 사안에서 당사자가 이번 관세 인상을 사정변경 사유로 주장한다면, 법원이나 중재기관이 계약 체결 시점과 관세 변동 시점 간의 간격, 세율 인상이 계약 이행에 미친 영향, 이익 균형에 대한 파급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기존 판례와는 다른 판단을 내릴 가능성도 존재한다.
다만, 이번 관세 마찰이 발생한 지 아직 시간이 짧고, 사정변경의 법적 효과가 계약 변경보다는 계약 해제에 집중되는 실무 관행, 그리고 법원이 상업 조건의 조정까지 관여하는 데에 부담을 느끼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해결은 당사자 간 협상을 통해 이루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여진다.
중국 내 한국기업을 위한 대응전략
중국에 생산기지를 두고 미국 시장을 대상으로 수출을 진행하는 한국 기업들은 이번 미·중 간 관세 인상의 직격탄을 맞는 구조에 놓여져 있다. 따라서 계약상 준거법, 관세 및 세금 부담 주체, 불가항력 및 사정변경 조항의 유무와 내용, 가격 조정이나 계약 해제 조건 등을 중심으로 기존 계약을 철저히 검토해야 한다.
또 필요 시 재협상 가능성에 대비한 전략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관세 인상으로 인한 비용 상승은 협상을 통한 조정으로 대응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법이며, 원산지 변경, 가격 재조정, 세금 부담 등 다양한 옵션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