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회장을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로 인정하지 않아 무죄가 선고된 판결 - 안범수 변호사
등록일 2026.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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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회장을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로 인정하지 않아
무죄가 선고된 판결
대상판결: 의정부지방법원 2026. 2. 10. 선고 2023고단834 판결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의 범위
중대재해처벌법 제2조 제9호 가목은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중대재해처벌법상 규율 대상이 되는 경영책임자등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위 규정상 ‘또는’의 의미와 그 해석과 관련하여, 안전보건총괄(최고)책임자(Chief Safety Officer, CSO)를 별도로 선임한 경우 대표이사(또는 사업총괄책임자, 이하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등으로 보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에 대해 견해가 대립하였습니다.
최근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은 “별도로 선임된 CSO가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전적으로 위임받았다고 인정되는 경우 CSO가 경영책임자에 해당하고,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라고 판단하는 한편, 개별 사건에서 문제가 되는 안전보건에 관한 최종적인 결정권을 대표이사가 행사한 경우에는 CSO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대표이사를 경영책임자등으로 보아야 한다는 법리를 설시하였습니다.
관련하여 법인의 대표이사가 아닌, 그룹 회장과 같이 기업 집단 전반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를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로 보아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에 대해 실무상 견해가 대립하였는데, 대상판결은 그룹 회장이 경영 일선에 관여하고 안전 관련 보고를 받았더라도 그로 인해 대표이사가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했다는 점 등이 엄격하게 입증되지 않는 한 그룹 회장을 경영책임자로 볼 수 없다는 법리를 설시하였습니다.
대상판결의 요지
H산업이 운영하는 양주시 소재 K 사업소(채석장)에서 2022. 1. 29. 09:50경 대규모 석분토 야적장이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이 사고로 하부 채석장에서 채석 작업을 하던 근로자 3명이 상부에서부터 무너져 내린 석분토 약 30만㎥에 파묻혀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하였습니다. 이에 검찰은 H산업의 그룹 회장인 A가 H산업의 실질적인 경영권자로서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중대재해처벌법위반(산업재해치사), 산업안전보건법위반 등 혐의로 기소하였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내용과 입법과정에서의 논의 등에 비추어 보면, 법인의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의 주체인 ‘경영책임자(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는 기본적으로 대표이사가 이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고, 나아가 대표이사 아닌 자를 위 ‘경영책임자’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대표이사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대표이사 아닌 자에게 실질적·구체적으로 법인의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다는 점 및 그로 인해 대표이사가 중대재해처벌법에 규정된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였다는 점 등이 입증되어야 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보았습니다.
대상판결은 그룹 회장인 피고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인정하였습니다.
① H산업 직원 등의 이메일 내용, 파일명, 카카오톡 메시지, 수첩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회장님 보고', 'TM 보고', 'TM 지시사항', '경영층 지시사항', '회장님 지시', '회장님 직보', 'Top Management께 직접 보고', 'TM 코멘트 사항', 'TM 부재중 업무보고', '회장 수명사항' 등의 기재들
② 부문별 정례보고, 경영관리회의 등의 보고 자료들 및 정례보고 후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정례보고 관련 내용을 정리한 문서들
③ 이 사건 당시 H산업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H산업을 포함한 H 그룹 계열사들에게 환경·안전에 관한 매뉴얼을 제공하거나 H산업을 포함한 계열사들을 대상으로 교육, 평가 등의 업무를 담당한 환경안전본부 및 환경안전본부장의 역할
위와 같은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각 부문별 정례보고 등에 참석하기도 한 사실, 때로는 각 부문별 대표자 또는 담당 임원 등으로부터 직접 보고를 받거나, 각 부문별 대표자 또는 담당 임원 등에게 지시를 내리기도 한 사실은 인정된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다음의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그룹 회장인 피고인이 중대재해처벌법에서 규정하는 '경영책임자(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보았습니다.
① 정례보고를 비롯한 월간실적회의(MPM), 경영관리회의 등의 각종 보고나 회의가 그룹 차원에서 부문별 실적 또는 현안 등을 공유하는 자리였던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위와 같은 각종 보고나 회의가 이 사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피고인이 H산업 등의 경영책임자로서 부문별 대표이사 등으로부터 경영상 주요 현안 등을 보고받고, 안전보건업무를 포함한 사업을 총괄하여 경영상 결정을 내리는 절차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② 피고인이 때로는 각 부문별 대표자 또는 담당 임원 등으로부터 직접 보고를 받거나, 각 부문별 대표자 또는 담당 임원 등을 통해 지시를 내리기도 한 사실만으로 이 사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H산업 내지 골재 부문의 사업을 총괄하였다거나 H산업을 운영하였다는 점 및 나아가 그로 인해 대표이사인 B가 중대재해처벌법에 규정된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거나 현저히 곤란하였다는 점이 입증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③ 또한 사업 또는 사업장을 운영하면서 안전·보건조치의무를 위반하여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경영책임자 및 법인의 처벌 등을 규정함으로써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려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목적에 비추어 보면, '경영책임자'는 법인이 실질적으로 지배 운영·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종사자의 안전·보건상 유해 또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그 사업 또는 사업장의 특성 및 규모 등을 고려하여 하여야 하는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 제1항 각 호의 조치들 및 같은 법 시행령 제4조 각 호, 제5조 제2항 각 호의 사항들을 구체적·실질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그런데 H 그룹의 규모나 조직 등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이 위와 같이 중대재해처벌법에 규정된 의무를 구체적·실질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에 해당한다고 단언할 수 없다.
이에 따라 법원은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은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 위반 여부 등에 관하여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시사점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검찰이 그룹의 정점에 있는 최고경영자(회장)를 실질적인 의사결정권자로 지목하여 수사하고, 대표이사뿐만 아니라 그룹 회장까지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로 기소하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대상판결은 대표이사가 존재하는 법인에서 그 상위에 있는 그룹 회장을 경영책임자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대표이사의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 이행이 사실상 불가하거나 현저히 곤란한지 여부’라는 매우 구체적이고 엄격한 입증이 필요하다는 점을 명확히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최근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 판결을 중심으로 ‘경영책임자 등’ 개념의 외연이 확장되는 추세가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 의미가 크다고 할 것입니다.
이는 그룹 차원의 단일화된 회의 체계가 존재하고 회장이 경영 현안이나 안전 문제에 관여하여 지시를 내렸다는 사실만으로는 곧바로 회장에게 중대재해처벌법상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한 것입니다. 향후 검찰 수사 단계 및 법원 공방에서 오너 경영인의 책임 소재를 다투는 핵심적인 방어 법리로 활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대상판결은 1심 판결이므로 향후 상급심 법원(의정부지방법원 2026노596)의 판단을 계속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업은 대상판결의 법리에 기초하여 기업 집단 내의 지휘·보고 체계와 각 계열사 대표이사의 권한 및 책임 범위를 명확히 분리하고, 실제로 각 법인의 대표이사가 독립적이고 실질적인 안전보건관리 권한 및 예산 집행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내부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정비하여야 할 것이며, 미리 위와 같은 의사결정 체계를 사전적으로 점검하는 등의 리스크 점검·관리를 선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