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은 정말 집으로 돌아왔을까 - 이현정 변호사
등록일 2026.08.05
조회수 83
스파이더맨은 정말 집으로 돌아왔을까
《홈커밍》에서 《브랜드 뉴 데이》까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스파이더맨을 상징하는 이 문장은 그가 가진 능력보다 그 능력으로 인해 짊어져야 하는 의무를 강조한다. 피터 파커는 강한 힘을 얻지만, 그 힘으로 행복해지는 영웅은 아니다. 사람들을 구할수록 평범한 일상에서는 멀어지고, 소중한 사람을 지키려 할수록 더 큰 상실을 겪는다.
무언가를 얻는 순간 반드시 다른 무언가를 잃는 영웅. 그것이 스파이더맨의 정체성이다.
그런데 이 불행은 작품 속 피터 파커에게만 따라다닌 것이 아니다. 스파이더맨은 영화 밖에서도 자신이 태어난 마블을 떠나 여러 회사를 전전하고, 복잡한 계약과 파산, 소송에 얽힌 영웅이었다.
늘 불행했던 영웅, 영화 권리도 떠돌았다
스파이더맨은 마블 코믹스에서 태어났지만, 마블은 처음부터 오늘날과 같은 영화 제작사가 아니었다. 마블은 1980년대 스파이더맨의 영화화 권리를 여러 독립 제작사에 넘겼다. 그러나 권리를 확보한 회사들이 영화를 완성하지 못하거나 파산하면서 극장 영화, 텔레비전, 홈비디오 등에 관한 권리가 여러 회사로 흩어졌다.
MGM, 컬럼비아, 비아컴, 소니 등 여러 회사의 주장이 얽히면서 스파이더맨은 영화보다 법정에 먼저 등장했다. 설상가상으로 권리의 원래 주인인 마블마저 1996년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스파이더맨을 둘러싼 권리관계는 한때 누가 영화를 만들 수 있는지조차 쉽게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꼬여 있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랐고, 가장 강력한 캐릭터에는 가장 복잡한 계약이 따라붙었다.
오랜 소송과 협상 끝에 1999년 권리관계가 정리되면서 소니픽처스의 컬럼비아 픽처스가 스파이더맨 영화화 권리를 확보했다. 이를 바탕으로 2002년 샘 레이미 감독과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이 탄생했다. 마블은 스파이더맨을 창조했지만, 정작 스파이더맨 영화를 마음대로 만들 수 없게 된 것이다.
마블을 인수해도 스파이더맨은 돌아오지 않았다
디즈니는 2009년 마블을 인수했다. 그러나 회사가 인수됐다고 해서 이미 다른 회사에 허락한 권리까지 자동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디즈니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도 소니픽처스가 디즈니의 마블 인수 전에 체결된 라이선스 계약에 따라 스파이더맨 영화를 제작하고 배급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고 기재돼 있다.
IP는 하나의 물건처럼 통째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원작 만화, 영화, 방송, 게임, 장난감과 의류 등 이용 분야에 따라 권리가 나뉠 수 있다.
같은 캐릭터라도 어떤 분야에서는 마블의 것이고, 다른 분야에서는 소니가 독점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스파이더맨은 마블의 대표 영웅이지만, 극장 영화에서는 소니의 영웅이기도 했다.
《홈커밍》, 마블로 돌아온 줄 알았지만
마블 스튜디오는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MCU(Marvel Cinematic Universe)를 성공시켰다. 그러나 정작 마블의 대표 캐릭터인 스파이더맨은 그 세계에 들어갈 수 없었다.
결국 2015년 소니와 마블 스튜디오는 새로운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소니가 가진 스파이더맨을 MCU 영화에 출연시키고, 케빈 파이기가 소니의 스파이더맨 단독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구조였다.
다만 소니는 영화의 제작비를 부담하고, 영화를 배급·소유하며, 최종적인 창작 통제권도 계속 보유했다. 스파이더맨의 영화 권리가 마블로 반환된 것이 아니라, 소니가 마블 스튜디오를 영화 제작에 참여시킨 것이다.
스파이더맨 단독 영화의 핵심 권리를 계속 보유했다.
케빈 파이기가 단독 영화 제작에 참여했다.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은 2016년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를 통해 MCU에 합류했고, 이듬해 첫 단독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이 개봉했다.
’홈커밍’은 미국 고등학교의 전통 행사인 동시에, 스파이더맨이 마블의 영화 세계로 돌아왔다는 중의적인 제목이었다. 소니 측 역시 제목에 학교 행사와 마블로의 귀환이라는 두 의미가 담겼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귀향은 완전한 귀환이 아니었다. 스파이더맨은 마블의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집의 열쇠는 여전히 소니가 가지고 있었다.
집에서 멀어지고, 돌아갈 길을 잃다
두 번째 영화의 제목은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이었다. 영화 속에서 피터 파커가 뉴욕을 떠나 유럽으로 향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권리관계를 알고 보면 ’집에서 멀리’라는 제목은 또 다른 의미로 읽힌다. 스파이더맨은 MCU에서 아이언맨의 후계자처럼 성장했지만, 계약상으로는 여전히 마블에 완전히 속하지 않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더욱 공교롭게도 《파 프롬 홈》 개봉 직후인 2019년 소니와 디즈니의 재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스파이더맨이 MCU에서 다시 퇴장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양측은 약 한 달 뒤 다시 합의했고, 마블 스튜디오와 케빈 파이기는 세 번째 단독 영화 제작에 계속 참여하게 됐다. 그 영화의 제목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었다.
영화에서는 다른 세계에서 온 인물들이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MCU에서 쫓겨날 뻔한 스파이더맨의 현실을 떠올리면 ’집으로 돌아갈 길이 없다’는 제목은 소니와 디즈니의 계약협상을 풍자한 농담처럼도 들린다.
물론 《파 프롬 홈》과 《노 웨이 홈》이 실제 권리분쟁을 암시하기 위해 정해진 제목이라는 공식적인 근거는 없다. 다만 작품 밖의 역사를 알고 나면 영화 제목이 전혀 다른 의미를 얻는다.
《브랜드 뉴 데이》, 정말 새로운 날일까
네 번째 톰 홀랜드 주연 영화는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다. 영화는 2026년 7월 31일 개봉했으며, 세상 누구도 피터 파커를 기억하지 못하게 된 《노 웨이 홈》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집으로 돌아왔고, 집에서 멀어졌으며, 돌아갈 길마저 잃은 끝에 이제는 ’새로운 날’을 맞은 셈이다.
그러나 영화 밖의 권리관계까지 모두 새로워진 것은 아니다. 소니 공식 자료에는 이 영화의 제작자로 마블 스튜디오의 케빈 파이기와 소니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이끌어 온 에이미 파스칼 등이 함께 기재돼 있다.
스파이더맨은 여전히 소니와 마블의 협력을 통해 움직이는 영웅이다.
《홈커밍》에서 《브랜드 뉴 데이》까지의 제목을 차례로 놓으면 한 영웅의 성장사인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캐릭터를 둘러싼 계약의 역사처럼 보인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완전히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집에서 멀어졌고, 한때는 돌아갈 길마저 잃을 뻔했다.
그리고 계약이 다시 이어질 때마다 새로운 날을 맞았다.
큰 IP에는 큰 계약이 따른다
스파이더맨의 역사는 IP를 가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준다.
캐릭터를 창작했다고 해서 모든 이용 권리를 영원히 직접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회사를 인수했다고 해서 과거에 체결된 라이선스 계약까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권리 전체를 소유하지 않아도 정교한 계약과 협력구조를 통해 세계적인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소니는 스파이더맨 영화화 권리를 지켰고, 마블은 스파이더맨을 MCU로 불러들였다. 한쪽이 모든 권리를 되찾은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필요한 권리를 계약으로 연결한 것이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그리고 거대한 IP에는 그 힘을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사용할지를 정하는 거대한 계약이 따른다.
스파이더맨은 늘 불행을 짊어지는 영웅이다. 힘을 얻은 대가로 평범한 삶을 잃고, 사람들을 구하는 대가로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포기한다.
영화 밖에서도 비슷했다. 마블의 가장 강력한 영웅은 회사의 위기 속에서 집을 떠났고, 여러 제작사와 법정을 떠돈 뒤에도 완전히 돌아오지는 못했다.
그러나 스파이더맨은 그 불완전한 관계 속에서도 계속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왔다.
어쩌면 스파이더맨의 진짜 초능력은 벽을 타거나 거미줄을 쏘는 능력이 아닐지도 모른다. 마블과 소니, 두 회사가 만든 권리의 거미줄 사이를 끊어지지 않고 계속 날아다니는 능력일 수 있다.
《노 웨이 홈》이 개봉했을 당시에는 코로나19 방역 절차로 영화관 이용에도 여러 확인 과정이 필요했다. 필자 역시 보건소에서 받은 음성확인서를 제시한 뒤에야 어렵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던 시절의 기억이다.
이제는 그러한 제약에서 벗어나 다시 편안하게 영화관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이번 《브랜드 뉴 데이》만큼은 복잡한 절차나 부담 없이 시원한 극장에서 온전히 즐겨보고 싶다. 제목 그대로 스파이더맨에게도, 관객에게도 새로운 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