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10월 29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퇴직연금 기능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올해 2월 노사정 공동선언을 구체화한 것으로, 퇴직급여 사외적립의 단계적 의무화와 기금형 퇴직연금 활성화가 핵심이다. 기업으로서는 새 제도에 대한 부담부터 느낄 수 있지만, 당장 모든 사업장의 퇴직급여 운영방식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번 발표는 법 개정을 전제로 한 추진계획이므로, 변화의 방향과 자사에 필요한 준비를 차분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사외적립의 단계적 의무화다. 연내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이 이루어지면 1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28년 1월 100인 이상, 2029년 1월 10~99인, 2030년 1월 10인 미만 사업장 순으로 적용된다. 이때 사외적립 의무는 각 단계 시행 이후 발생하는 계속근로기간부터 적용된다. 따라서 과거 근속기간분까지 한꺼번에 외부에 적립하도록 하는 방안은 아니다. 사업장 규모의 산정 기준 등 세부사항은 개정안에서 확인해야 한다.
정부는 의무화에 앞서 중소기업의 도입 부담을 덜어 주는 지원책도 내놓았다. 2027년 정부 예산안에는 30인 미만 중소기업이 의무화 전에 퇴직연금을 도입하면 최저임금 130% 미만 근로자 부담금의 10%를 지원하는 사업이 반영됐다. 또한 50인 미만 중소기업이 퇴직연금을 신규 도입하고 1개월이 지나 경영자금을 융자받으면 대출금리 2%p를 보전하는 사업도 함께 반영됐다. 다만 이는 정부안이어서 국회 예산 심의를 거쳐야 확정된다. 이와 함께 30인 미만 기업에는 수수료 특례가 적용되고, 사용자의 규약 신고 의무도 간소화된다. 근로자대표의 동의 또는 의견청취 절차는 그대로 유지된다.
사외적립 의무화가 퇴직급여를 '적립하는 방식'에 관한 변화라면, 기금형 퇴직연금은 적립금을 '운용하는 방식'에 관한 변화다. 기금형은 DC형과 IRP에 적용되고, DB형은 대상이 아니다. 유형은 수탁법인 설립 주체에 따라 금융기관 개방형, 연합형, 공공기관 개방형으로 나뉜다. 사업장은 기존 계약형과 함께 두거나 여러 기금을 설정할 수도 있으므로, 모든 기업이 기금형으로 전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특정 기금형을 기본값으로 정하려면 근로자대표의 동의가 필요하다. 또한 운용손익은 가입자에게 귀속되므로, 전문기관이 운용한다고 해서 손실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퇴직연금을 운영하는 기업도 이번 방안과 무관하지 않다. 정부는 의무화와 함께 사외적립의 이행력을 높이는 조치를 추진한다. DB형은 적립금 미충족 사업장에 대한 정기감독이 확대된다. 최소적립금의 95% 이하로 적립이 부족하면 1년 안에 부족분의 3분의 1 이상을 해소해야 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DC형은 사용자의 임금 정보 제공 의무가 신설되고, 부담금 미납 현황을 파악하는 체계가 구축된다.
결국 기업이 지금 할 일은 자사의 현재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퇴직연금을 아직 도입하지 않았다면 사업장 규모에 따른 적용 시점과 납입 재원을 따져 봐야 한다. 이미 운영 중이라면 DB형은 적립비율을, DC형은 부담금 납입 현황을 점검해 두는 것이 좋다. 기금형 도입을 고려한다면 수익률만이 아니라 수수료와 운용방식, 근로자에게 제공되는 설명자료까지 비교해야 한다. 어느 경우든 제도를 도입하거나 바꾸려면 근로자대표의 동의나 의견청취를 거쳐야 하므로, 협의 일정도 미리 확보해 두는 것이 좋다.
정부는 11월 개정안을 마련하고 12월 국회 본회의 통과를 추진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의무와 시행일은 최종 입법내용을 확인해야 하지만, 사외적립 의무화와 기금형 도입이라는 방향은 이미 노사정 합의로 정해졌다. 성급하게 제도를 바꾸기보다 현행 운영의 빈틈을 먼저 메우고, 이번 개편을 퇴직급여 관리체계를 정비하는 계기로 삼기를 권한다.
변호사 김 동 엽